2009년. 이었나
내가 학부 2학년이던 시절에, 아마 대학원생의 한 여학생이 자살을 했다.
그리고 2011년
이제 3월 말인데.
올해만 벌써 학우가 3명이 스스로 자신의 유명을 달리했다.
아라에서도 그렇고, 언론에서도 그렇고 많은 말들이 있지만.
과연. 왜일까.
오늘 아라에 한 학우분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담은 글을 포스팅 해주셨다.
아래와 같은 내용.
( 아직 불펌이라 허락 받으면 계속 게시하고, 아니면 지울래 )
[ 우울한 음악은 듣지 않는다 ]
1.
저녁으로 왕비성에서 중국 음식을 배불리 먹은 후 동아리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중국음식을 배터지게 먹고 커피를 먹으니 속이 메슥거려서 술은 안마시고 이야기만 하다가 일찍 올라왔다. 방에 먼저 와서 컴퓨터를 하고 있으니 룸메가 들어온다. 너 가고 나서 네 얘기가 나왔어. 동아리 사람들이 다들 니가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대. 예전만큼 우울해 보이지 않는다더라.
아 그랬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잘 숨겨왔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다른 사람들도 모두 알고 있었구나.
2.
그러고 보니 우울을 무슨 자랑스런 명찰 정도로 생각하여 달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그 우울에는 여러가지 쌓이고 쌓인 외적 내적 요인이 다 섞여 있었는데, 한마디로 뭘 해도 잘 되지 않던 때, 아니 뭘 하고 싶지 않은 때였다.
생각해보면 그 뿌리는 꽤나 깊어서 고민들은 1학년 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다들 그렇듯 멋진 캠퍼스 생활(교양 강좌, 동아리, 연애)을 기대하며 들어왔던 내게 대학교는 고등학교의 연장선 이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 때 처음 본 대전 캠퍼스는 너무 삭막했고(인구밀도가 너무 적었다) 학업은 고등학교와 다를 바 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거기에 주변에는 잘나가는 친구도 너무 많았다. 분명히 같이 논 것 같은데 내가 세 시간 할 공부를 한 시간만에 해버리니 원. 중간고사를 치고 기말고사를 치고. 시간이 가면 갈 수록 점점 나는 심리적으로 위축되었고, 그 결과는 여름에 학점이란 이름으로 나에게 돌아왔다. 수치로 환산된 나의 첫 학기는 비록 3.0을 겨우 넘기긴 했지만, 다음에는 더 잘해야 된다는 부담감이 되어 다시금 마이너스 피드백으로 작용했다. 그렇게 자신감을 잃은 채로 가을학기를 맞았다. 잘 할 자신이 없어 미적 2를 첫 강의도 듣지 않고 드랍해버렸다. 뭔가 꼬이는 것 같았고 어쩌면 풀 기회이기도 했지만 그 때는 별 생각이 없었다. 미적을 드랍하고 교양을 중점적으로 들은 덕분에 학점도 괜찮게 나왔다.
진리관 5층에서 내 2학년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 듣기 시작한 전공 수업은 너무 양이 많고 어렵게 느껴졌고, 그에 반해서 친구들은 다들 잘 해나갔다. 고등학교 때 진절머리를 칠 만큼 겪었던 경쟁 스트레스가(혹은 무거운 전공책들이) 다시 어깨를 무겁게 눌러왔다. 분관에서 공부하는 다른 사람들을 보고 싶지가 않았기에, 점차 방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다.
방은 북향이었고 하루종일, 일년 내내 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거나 침대에 누워 라디오헤드나 시규어 로스같은 우울한 노래를 한없이 듣곤 했다. 침대에 누워 그런 음악을 듣고 있으면 나를 둘러싼 기숙사 방이 녹아내리면서 바닥이 꺼져가는 기분이었다.
무언가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공부는 적당히 대충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수업도 나가지 않게 되었다. 9시 수업은 신청하지 않았고 10시 반 수업은 드랍 해버렸다. 나중에는 오후 수업도 나가기 벅찼다. 원래는 헛소리도 잘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밝은 이미지였는데, 동아리도 나가지 않고 갈수록 사람들을 만나지 않게 되었다. 밥은 혼자 먹거나 대충 먹었고, 그나마도 굶지 않을 때의 이야기였다. 자존감도 줄어들었다. 다른 사람에게 내 자신을 '찌질하다'고 표현하는 빈도가 늘어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문제는 그 때는 내가 나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몰랐고, 그래서 그러한 상태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뭔가 내가 달라져간다고 느끼긴 했지만,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싶지는 않아서 원래 내 천성이 이랬나보다 생각하면서 살아갔다. 더욱 힘들고 괴로운 사람들도 많을텐데 고작 이런 걸로 투정부리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너 정도면 과고 나왔겠다 카이스트 왔겠다 인생에 별 기복도 없고 괜찮은 편이잖아? 쌓이기 시작한 정서적 스트레스들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는데 나는 그냥 모른체 하고 있었다.
내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3학년 봄학기였다.
마침내는 다른 사람들이 귀찮지 않게 그냥 죽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막 심각한 자살충동은 아니었는데, 죽음에 대한 생각을 곧잘 하곤 했다. 그냥 죽으면 어떨까, 내가 없었더라면 어떨까. 누군가 생각이나 해줄까? 죽음은 멀리 있지 않은 거겠지. 곧 죽을 수도 있을 거야 하며 노래를 들으면서 그 경계에 있는 생각들을 했다. 무의식적으로 피해오던 생각인데, 한번 시작하니 막혀있던 둑이 터지듯이 계속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룸메가 나가고 나면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약을 먹거나 손목을 긋는 상상을 했다. 여차하면 그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커터칼을 손목에 가져다 대보기도 했고, 약국에서 수면제를 파는지 알아보기도 했다. 나중에는 해가 뜨는 것도 싫어져서 이불을 덮고 침대에서 나오지 않았다. 밤에 꾼 꿈에서 물속에 가라앉은 나 자신을 보고 아침에 일어나서 책상에 머리를 쳐 찧으며 운적도 있었다. 정말 그랬었다.
이래서는 안될 것 같아서 결국은 친한 친구들을 불렀다. 구드 프랑스에서 밥을 먹으면서(이때는 구드 프랑스였다) 눈물이 그렁그렁 나오려는 걸 참고 내 이야기를 했다. 고맙게도 친구들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었다.
이야기를 하면서 오랜만에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방에 돌아왔다. 방문 앞의 거울을 지나가는데 완전 거지같은 놈이 서있었다. 머리도 감지 않고 수염은 일주일 이상 깎지 않아 더럽게 길어 있었다. 얼굴에는 예전의 웃음이 지워져 있었다. 전환점이 필요했다.
결국은 3학년 봄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결심했다. 1년간 쉬면서 내가 하고 싶던 것들도 해보고 여유를 가지기로 한 것이다. 긴 여행을 계획했다.
3.
요즘은 우울한 음악은 별로 듣지 않는다. 예전에는 미친놈 같은 음악 듣더니 요즘은 안그러네? 반년만에 다시 만나고 2년만에 다시 방을 쓰게 된 룸메가 처음 나에게 한 말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너 세계여행이란 걸 다녀오더니 정말 많이 바뀐 것 같아.
사실 여행이 그냥 시간낭비는 아니었을지, 여행을 하면서도 마치고 와서도 속으로 수없이 되물었다. 8개월동안 많은 사람을 보고 만나고 헤어지면서 깊은 외로움을 느꼈고, 그만큼 큰 자유를 느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게 날 어떻게 바꾸게 될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돌아와 다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여행 중에 적어도 두 가지는 배웠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첫째는 우울한 상태에 빠지면 의식적으로 그 감정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혼자 고민을 품고 있다가 내 상태를 더 나쁘게 만들지 말고 주위의 조언을 구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의식적으로 그 수렁에서 나오려고 노력 해야한다. 친구들(혹은 선배, 선생님, 가족, 누구든지)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장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비록 친구들이 실제적인 조언을 줄 수는 없더라도, 이야기 한다는 자체에서 많은 위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이야기를 하면서 나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둘째는 자존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상황이 나쁘고 힘들더라도 나 자신을 비하하면 안된다. 내가 나 자신을 버리는 순간 모든게 끝난다. 내가 하찮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존감을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들과 나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보아야 한다.
당연한 것들이지만 와닿지 않던 이런 말들이 지금은 근 2년간의 생활을 새롭게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되었고 그 동안 내가 한 말들, 내가 한 행동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2년 동안 우울증을 겪으면서 내가 하지 못했던 일이 후회되었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공부도 열심히 재밌게 하고 학점도 (어쩌면) 쌓았을텐데,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연애도 (어 쩌 면) 해봤을 텐데. 그 2년 동안 내가 보여주었을 자신감 없는 행동이 좋아했던 여자에게는 어떻게 비추어졌을지, 내가 자기비하에 빠져 퍼붓던 독설로 가득찬 조롱을 친구는 어떻게 들었을지에 생각이 미치자 난 얼굴을 물통에 쳐박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3.
지금도 우울한 음악은 듣는다. 우울한 음악만 끼고 살던 그 때도 그 나름대로의 의미는 있을 거다. 하지만 시간은 지났고, 더 이상 그 때 듣던 음악들도 그 때처럼 들리진 않는다. 같은 음악이라도 그 때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고 지금에서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달라서 그런 것일테다. 같은 음악이 나에게 다르게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나는 내가 바뀌었음을 느꼈고, 힘들었던 2년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깨닫게 되었다.
---
예전에 써놓았던 글인데 용기를 내서 올려봅니다. 요즘 연이어 들려오는 소식이 너무 가슴이 아프군요. 혼자 앓고 있지 말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는 것이 최선인 것 같습니다. 친구라면 다들 잘 들어주고 격려를 해줄 겁니다. 혹시나 힘들어하는 분들께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http://kidsmoke.egloos.com/2715928 에 있는 원본을 조금 고쳐서 올렸습니다.
---
그리고 이 글을 읽으며 느낀 내 생각은 대충 이렇다.
우선 용기에 감사드리며
전 정말 좋게 읽었습니다.
아... 대부분 공감되는 이야기이고
감정이입이 심하게 잘 되어서 보는 내내 내 얘기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퇴근해야되는데 울컥해서 눈물이 고이려고하네요.
오늘은 퇴근하고 잉여같이 티브이만 보면서 우울해하지 말고,
조용한 까페에들러 좋아하는 차와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좋아하는 책을보며 제 자신에게 상을 줘야겠습니다.
이 힘든 세상 근 21년 때론 열심히 때론 덜 열심히 때론 대충이나마 살아온 저에게,
10년 넘게 공부하며 (즐거울 때도 있으나) 때론 스트레스로 힘들어한 나 자신에게,
앞으로도 하고 싶은 것이 셀 수 없이 많고 이루고픈 꿈이 많은 나 자신에게.